시점의 정치학 · 2
토큰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7~2018년의 증권형토큰공모 (STO, Security Token Offering) 열풍은 규제 공백과 유동성 부재 속에 한차례 좌초했다. 그럼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리고 왜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자산운용사의 수장이 이 메시지를 반복하는가?
STO 시즌이 빠르게 가라앉은 이유는 명확했다. 발행은 가능했으나 거래소가 부재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SEC) 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으며, 발행 자산도 사업 초기 스타트업 지분처럼 본질적 신용도가 낮은 것들이 많았다. 발행은 했는데 살 사람도 팔 사람도 없었다.
2024년의 환경은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 사실은 이렇다.
첫째, 2024년 1월 SEC 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 (ETF, Exchange-Traded Fund) 를 승인했다. 가상자산 인프라 자체에 대한 규제 정당성이 처음으로 부여됐다.
둘째, 블랙록·피델리티 같은 운용자산 (AUM, Assets Under Management) 합산 수조 달러급 운용사가 발행자로 직접 등판했다.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크게 줄었다.
셋째, 발행 자산이 사업 지분이 아니라 미 국채와 머니마켓펀드 (MMF, 단기 금융상품) 였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큰 자산이 첫 대상이 되며 기관 자금 채택 장벽이 무너졌다.
핵심은 핑크의 메시지가 단순한 기술 예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블랙록은 2024년 GIP (Global Infrastructure Partners,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스) 를 인수하며 데이터센터·에너지 인프라 같은 사모자산 영역에 진입했다. 사모자산은 본질적으로 비유동적이라 기존 펀드 구조로는 일반 투자자에게 닿기 어렵다. 토큰화는 사모자산의 유동성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블랙록이 토큰화 인프라의 표준 발행자가 되면 자사 사모자산의 분배 경로까지 동시에 확보한다. 메시지와 사업 모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핑크 본인의 입장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2017년 그는 비트코인을 '돈세탁 지표' 라 불렀고, 2022년 11월 FTX 붕괴 직후엔 '코인 자체보다 그 밑의 토큰화 기술이 다음 세대 시장을 만든다' 고 입장을 틀었다. 5년 사이의 전환은 신념이 아니라 사업 기회의 재평가에 가깝다.
핑크의 토큰화 메시지는 기술 예언이라기보다 분배 전략이다. 블랙록이 발행 표준이 되면 사모자산의 유동성까지 자기 인프라 위에서 만들어진다.